|
| ㆍ작성자 |
인터뷰365
|
| ㆍ작성일 |
2025-05-07 (수) 13:24 |
|
|
ㆍ추천: 0 ㆍ조회: 59
|
|
|
ㆍIP: 112.xxx.114 |
|
|
[송세인의 웃긴 독서] (12)호텔 조식을 좋아하시나요?
[송세인의 웃긴 독서] (12)호텔 조식을 좋아하시나요?
인터뷰365 2025.05.07 송세인 칼럼니스트
- 진민영 에세이 '간소한 삶에 관한 작은 책'
작가 송세인은 웃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는 힘들고 아프고 슬플 때마다 독서를 통해 마음을 다독였다. 죽자고 생이 덤빌 때마다, 웃자고 책으로 뛰어들었다. ‘웃긴 독서’는 잘 웃는 에세이스트 송세인의 독서 안내장이다. 그가 소개하는 열두번 번째 책은, '간소한 삶에 관한 작은 책' (진민영 저, 책읽는고양이, 2024년)이다.
인터뷰365 송세인 칼럼니스트(/에세이스트, 문화비평가) = 어려서는 우표수집, 신문스크랩 같은 일들이 좋은 취미라 여겨졌다. 의지가 강한 성격은 아니라 수집은 못 했지만 몇 해를 들고 다녔던, 신문에서 오린 기사가 하나 있었다. ‘해외토픽’에서 오려낸 것이었다.
뉴욕의 어떤 싱글 할머니가 (아마도 은퇴 이후) 일생 한 호텔에서 혼자 지냈는데, 호텔 방을 넘어서는 세간살이는 없었고 백 세 생일을 호텔에서 직원들이 열어주었다는 소식이었다. 몇 개 안 되는 세탁물 중 중요한 것은 호텔에 맡겼고 식사도 주로 호텔에서 매우 간단하게 해결, 수십 년 함께 해 온 직원들과는 가족같이 지낸다는 부연 설명도 있었다. 직원들과 생일 파티를 하고 계신 행복한 모습의 할머니 사진도 함께였다.
이 기사를 6학년 때인가부터 중학교 언제까지 수첩에 넣고 다녔다. 왜 하필 이 기사였을까. 꼬맹이였던 주제에 이 할머니처럼 호텔에서 혼자 살아야지 했던 것 같다. 돌아보니 장차 펼쳐질 오랜 미혼 생활에 대한 대단한 예지력이었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호텔에는 조식이 있지.
흐뭇한 생각으로 눈을 뜬 아침의 방은 어지러웠다. 치워야 할 일로 가득한 방을 보며 떠올렸다. 여기가 호텔이면 좋겠다, 씻고 호텔 조식을 먹으러 가서 우선 물 한 잔과 따끈한 커피를 한 잔 마시면 참 좋겠지 상상했다. 방에는 오월의 연휴를 맞이하기 전까지 바빴던 일상이 아우성을 치듯 여기저기 물건들이 가득 흩어져 있었다.
영양제, 머리핀, 수첩, 노트, 화장품, 소독제, 드라이어기, 머리빗, 책, 와인 반병(은 뭐냐), 앞치마(는 왜 방에 있지), (왜 바닥에 있는가) 바디로션, (만들어 대다 외려 지구 환경을 버릴 것 같은) 다수의 에코백 여러분 등등. 이 모든 것이 내는 소음을 못 들은 척하고 책을 펴들었다.
'간소한 삶에 관한 작은 책' 첫 문장은 미켈란젤로의 것이었다. 미켈란젤로에게 걸작 ‘다비드’이 탄생 비화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다비드가 아닌 것을 다 없애고 나니, 다비드가 되었다.”
이 혼란한 방에서 내가 아닌 것을을 다 없애고 나면 내가 남으려나, 안 남아도 좋으니 우선 좀 버리자 용기가 생겼다. 우선 한 페이지씩 고요하고 깨끗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이 책을 먼저 좀 읽고 하자 했다. 이제 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참이었고 마침 호텔 이야기가 처음이었으니까.
제목은 ‘호텔방’, ‘휑한 숙소에 들어앉아 있노라면 모처럼 고된 일상에서 탈출했다는 생각이 든다. (중략) 집에 쌓여있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물건들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홀가분하다.’
이 책과 어린 날의 내가 연동되는 듯한 순간이었다. 어린 날의 내가 그리 몇 년을 신문 기사를 수첩에 넣어 다니며 간곡히 원했던 것도 결국 이 이상적인 홀가분함이었던가. 우주 어딘가에 있을 나만의 이데아, 그 자유롭고 홀가분한 호텔방으로 떠날 수 없다면 이제 용기를 내어 버려보자, 오월 한 달은 무엇인가를 많이 버리는 시간으로 하자, 마치 수십 번 반복된 다이어트 같은 결심을 새삼 새롭게 해본다. 그러다 혹시 무언가를 계속 버리기를 실천하게 되고 부지불식간에 소중한 것을 잃게 되면 어쩌나 두려워지기도 하겠지만 그런 걱정도 이 책 '간소한 삶에 관한 작은 책'은 단정하게 해치워버린다.
이 책 ‘자유의 양면’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자유를 뒤집으면 도피가 있고, 불안을 뒤집으면 신중함이 있다. 시련과 배움이 한 끗 차이고, 안정과 권태도 한 끗 차이다. (중략) 잃어버린 것의 뒷면에는 언제는 얻게 될 새로운 수확이 있다.’
명심할 것이 있다. 기껏 다 버리고 새로 사라는 뜻이 아니다.
죽음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축복 중 최고의 축복이다.
이 책 '간소한 삶에 관한 작은 책'에서 기술한 소크라테스의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죽음이 모두에게 공평한 일인 것은 틀림없다. 이 틀림없는 일은 앞두고 최근 내가 결심하는 것은 두세 가지 정도이다. 하나. 최대한 폐가 되지 않게 지내다 간다.(어쩌면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라도 되어주고 간다.) 둘. 가능한 귀여운 할머니로 지내다 간다. 등등. 이를 위해서도 간결하고 간단한 삶과 주변 정리는 꼭 이뤄야 할 임무가 될 것이다. 이 책 140페이지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글을 써도 끝을 맺지 않으면 책은 나오지 않는다. 무언가를 시작하기보다 매듭을 잘 짓는 것. 새롭게 사는 일보다 가진 것을 소중하게 쓰는 것. 들어가는 입구와 함께 출구를 잘 닦아놓는 것. 입장보다 퇴장이 더 아름다울 것. 미니멀리즘이 일깨워준 지혜의 말이다.’
입장보다는 퇴장이 아름다울 것, 이 말은 전 생애에 걸쳐 이뤄야 할 일이 되겠지만 하루하루에도 적용이 될 것이다. 우리가 종교인이라면 기도를 통해, 수행 중이라면 수련을 통해, 그도 아니면 그저 한 페이지에 하나씩의 이야기로 구성된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매일의 입장과 퇴장을 깨끗이 닦을 수 있다. 수련처럼, 기도처럼.
이 책 '간소한 삶에 관한 작은 책'의 74페이지 '사치하는 인생'에는 일본의 시인 미야자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라는 시가 있다. 그중 일부다.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채소를 조금 먹고 (중략) 잘 보고 듣고 이해하고, 그리고 잊지 않고, (중략) 동쪽에 아픈 아이가 있으면 찾아가 간호해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가 있으면 찾아가 볏단을 져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찾아가 두려워 말라 달래고 (중략) 가뭄이 들면 눈물을 흘리고, 냉해 든 여름에는 허둥대며 걸으며 (중략) 칭찬도 받지 못 하고 미움도 받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정작 나 자신은 많은 식탐으로 시의 첫 줄부터 그렇게 살 자신은 없으나 하루에 한 번씩은 이런 글들로 마음과 일상과 공간을 닦는 삶, 그 정도 사치는 부려도 좋지 않겠는가 생각해 보게 되는 오월의 아침인 것이다.
출처 :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http://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109704&fbclid=IwY2xjawKHktBleHRuA2FlbQIxMQBicmlkETFCOTgzQ2NIenFNZkYxVUpEAR6TPk6hfQlmeom2R441HLnCJilDQbuUalamUAZAQdI-lLd1al6LhEjSpolSBg_aem_8-mOfo5Lbow5DqOrIvwBsg)
|
16
|
|
공지사항 
New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