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수출판사 홈페이지에 방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ㆍ작성자	지구별 여행자()
ㆍ작성일	2005-09-20 (화) 10:39

ㆍ추천: 0 ㆍ조회: 2737

ㆍIP:

좋은 사람이길 포기하면 편안해지지…….
도서명 : 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
알라딘에 오른 독자서평입니다.

좋은 사람이길 포기하면 편안해지지……. (평점:, 추천:1)

지구별 여행자() 2005-09-14 14:30

리수에서 신간 안내문을 보내왔을 때, 표지 사진이 무척 마음에 와 닿았다. 주하아린이 찍은 <북극너도밤나무> 잎사귀를 보고 있으니, 싱싱한 푸름이 그대로 내게 물들 것 같은 환상이 들 정도였다. 표지 사진으로도 충분히 편안해졌고 순전히 이것 하나만으로 손에 쥐었다. 그러나 대다수 독자들이 책을 읽는 동안 다소 불편했을 것 같다. 나 역시 반복되는 “(중략)”이란 글귀에 불편했으니깐. 이런 불편함이 어디서 오는지를 혼자 곰곰이 생각하다가 책 읽는 동안 얼마만큼의 집중력을 빼앗겼는지 모른다.

경우록(敬友錄)이란 부제(한국어판)를 읽고 으레 ‘수필(에세이)이겠거니.’ 하는 추측에서부터 오발탄이었다. 본문이 다 끝나고 마지막 장 출전을 보면서 비로소 내 탐정놀이는 끝났다. 이 책은 저자의 소설, 에세이, 심지어 기고했던 신문, 잡지에 글까지 그 중에서 좋은 글귀들만 따로 발췌한 모음집이다. 나 또한 책을 읽다가 좋은 글귀는 따로 발췌해 놓고 그 글귀만 음미하는 버릇이 있다. 이런 경우 발췌하게끔 만드는 글귀는 문장 몇 줄이 될 수 있으며, 때론 한 문단이 될 수 있고, 따로 떨어진 문단에 각각 문장 몇 줄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가장 난감할 때가 마지막 경우이며 이때는 지극히 개인적인 수집과정이므로 “(중략)”이란 단어 대신 띄어쓰기로 갈음한다. 처음에는 “(중략)”을 출판사가 유기적인 한 편의 수필집을 임의로 편집했던 결과라고 생각했다. 하나의 주제로 저자의 글을 모으는 과정에서 생긴 편집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비로소 책 곳곳에 “(중략)”이란 단어가 왜 그렇게 많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거기다 평소 소노 아야코의 문학을 접해 보지도 않았을 뿐더러, 솔직히 그녀의 입지를 알게 된 것도 이 책을 통해서이다. 그러니 (나와 같은 다른 독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표지 제목이나 표지 사진에 이끌려 이 책을 선택했다면 갑자기 튀어나오는 사람 이름이나 너무 심하게 편집된 듯한 글 흐름에 다소 짜증이 날만 하다.

역자 후기에 따르면 <좋은 사람이길 포기하면 편안해지지>란 직역된 원제도 나름대로 매력적이며 오히려 의역된 한국어판 제목보다 저자가 그 많은 책을 쓰면서 우리들에게 알리고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해진다. 즉, 원제 그 자체가 이 책이 발췌문으로 이루어진 목적을 충분히 설명해 주기 때문에 비로소 안도감마저 느껴진다. 아쉽다면 이 책이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라와 있는 현 시점에서 그보다 먼저, ‘작가의 다른 문학 작품이나 에세이를 접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란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이 글귀들의 출전도 접해볼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는 소망도 가져 본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으니 ‘소제목 밑에 출처라도 다 달아주는 세심한 배려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생각하는 나도 어쩔 수 없나 보다.

단 한 줄이라도 나를 흔들어 깨울 수 있다면 양서(良書)라는 평소의 가치관대로 발췌된 글귀 중 또 다시 나름의 안목으로 개인적인 발췌를 해 본다.

규칙이란 실은 스스로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하게 이중적용이 가능할 정도의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지 못하더라도 전혀 악인은 아니나 마음이 성숙치 못해 인정미도 없는 사람이 많은 게 현실처럼 느껴진다. 그렇지 않다면 몸의 어느 부분이 문제가 생겨 다른 사람의 행동거지에 툭툭 화를 내는 것이므로 우선 자신의 몸부터 치료했으면 싶다.(p235)

책을 다 읽고 ‘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은 과연 뭘까?’ 을 고민해 봤다. 저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나와 너는 다르다.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나의 틀 안에 끼워 맞추지 말아야 한다. 내 방식대로 상대를 단정 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 다름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순간, 우리는 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질 수 있다. 그리고 자기 자신 안에서 모든 일을 성찰할 수 있을 때, 타인으로부터는 물론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 남들의 시선을 떠나서 자기 삶의 진정성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실로 편안해지는 것이다.

끝으로 평소 나의 독서 습성대로, 책 여기저기 글자 한 자, 그림 하나까지도 안 놓치고 세세히 보다가 역자 후기에 일부분이 또 내 눈에 들어왔다. 하라주쿠 헌책방에서 3개월이 지나도 안 팔리는 100엔짜리 책들 중에 이 책도 포함되는지, 역자에게 물어보고 싶은 장난기가 살포시 발동한다. 히히……. 만약 이 책도 헌책방에서 산 100엔짜리가 맞으면, 난 그 이유를 작가의 글 역량이 아닌 순전히 출판사(그게 “쇼덴샤”든, “리수”든)의 발췌(편집) 능력에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