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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적 마음
김응교 인문여행에세이


김응교 지음/ 240쪽/ 14000

타산지석S

 

 

 


 책소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응교 교수의 일본 인문여행에세이. ‘예술’, ‘독서’, ‘사무라이’, ‘야스쿠니’ 총 4장 속에서 와비사비, 하이쿠, 우키요에, 마쓰리, 무라카미 하루키, 사쿠라, 사무라이, 야스쿠니 신사 등 한국인이 가장 궁금해 하는 일본인의 마음을 섬세하게 소개한다. 일본 어디를 가더라도 보다 깊게 보고 느끼고 분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책소개

저자소개

차례

 

 

 

 


왜 일본사람은 찬란한 벚꽃을 보며 죽음을 떠올리는가.

왜 단순하고 밋밋한 내용의 영화 '철도원'을 보며 한없이 눈물흘리나.

"잇쇼켄메이" 왜 일본사람들은 사소한 일조차 목숨걸고 하겠다고 습관처럼 말하며,

어째서 대를 잇는 장인이 많을까.

하루키는 일본인의 무엇을 대변하는가

야스쿠니 신사, 그들은 어떻게 신을 만들었고, 왜 반성을 모르는가.

 

체념의 문화

피할 수 없을 때, 단 하나의 선택은 받아들임 뿐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상이 자기 문화 속에 들어왔을 때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일본인의 생활방식 중 하나다. 지진 같은 재해의 비극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폐쇄된 좁은 공간에서 어떤 숙명도 피할 수 없을 때, 단 하나의 선택은 받아들임인 것이다. 어느 나라보다 많이 발달되어 있는 괴기담 시리즈도 일본의 이런 특성에 기반한다. ‘무섭다는 호기심이 일상에 스며든 결과이다. 헤어질 때 쓰는 인사말인 사요나라〔左様なら〕라는 말 속에도 체념의 철학이 깔려 있다. ‘사요는 즉 그렇다면일 뿐이다. ‘현실이 그렇다면 그대로 이 사실을 솔직히 받아들여 헤어집시다라는 의미인 것이다.

에도 시대의 화가 호쿠사이가 그린 후카쿠 36을 보면, 후지산도 삼킬 듯이 덤벼드는 파도에 마구 흔들리는 세 척의 생선잡이 배가 있다. 배에 탄 사공들은 피할 수 없는 거센 파도 앞에 납작 엎드려 있다.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을 대하는 자세다. 이런 풍경은 자연과 재해에 맞대응하는 일본인의 집단심리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오늘날 이들의 집단정신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마을축제인 마쓰리(祭り). 일본인 스스로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이 흥분의 공통분모는 하나의 제의가 주는 동질성의 힘, 피의 힘이다. 1억의 수다스러움은 미코시〔神輿 : 가마, 수레로 상징되는 집단정신으로 모아진다. 한편, 집단적인 힘이 자신들의 울타리를 벗어났던 지난 날, 무시무시한 이기와 차별의 결과를 낳았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죽음의 문화

목숨 걸고 일하고 죽음은 가볍게

지진이 빈번한 일본이란 땅은 죽음과 친해질 수밖에 없는 자연적 배경이다. 그래서일까. 일본 사람들은 눈부시게 만개한 벚꽃을 보면서도 죽음을 생각한다.

 

사쿠라가 만발할 때 술 한 잔 들고
   사쿠라가 질 때 함께 죽노라
  
(하이쿠의 한 구절)

 

죽음의 문화를 확고히 다져놓은 것은 사무라이 문화다. 사무라이는 배를 주릴망정 명예에 죽고 사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는다. 사무라이 문화, 곧 칼의 문화는 오늘날까지도 변용되어 곳곳에 스며 있다. ‘잇쇼켄메이(一生)’라는 말은 한국말로 의역하면 열심히라는 뜻이다. 원래는 주군의 영지를 목숨을 걸고 지킨다는 말이었는데, 그게 더 확실하게 자신의 생명을 걸고 열심히 일한다로 바뀌어 사용된다. 전국시대 때, 한 영주의 밥에서 머리카락 한 올이 나왔을 때, 벼락 같은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요리사의 머리가 베어졌다는 말이 진짜처럼 전해져 내려온다. 어찌 밥 한 그릇에 목숨을 걸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잇쇼켄메이는 오늘날 그 장소가 회사든 학교든 가정이든 공장이든 목숨을 걸고 일한다는 의미가 되었다.

일상적으로 봐도 죽음에 대한 이해에는 차이가 있다. 서양에서 죽음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한국의 경우는 최소한 원래의 장소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있다. 반면 일본인은 사망을 나쿠나루모노〔失亡 : 없어지는 것라고 한다. 그야말로 끝나는 것이다.

일본 문화물의 클라이맥스는 종종 아름다운 죽음으로 미화되곤 한다. 아름답게 미화된 죽음, 큰 것을 위해서는 죽어도 된다는 생각이 이들이 만든 문화물 곳곳에 스며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일상에서 문제 해결의 한 방법으로 자살을 택한다. 이렇게 일본이라는 나라에서는 종종 죽음으로 문제는 묻히고 더 큰 거짓말로서 보존되어 왔다.

이 죽음의 문화는 1869년에 세워진 야스쿠니 신사에 이르러 정점을 차지한다. 일본을 위해 싸우다 죽은 군인들부터 2차대전 때 죽은 250여만 명의 혼백이 신으로 모셔진 것이다. 죽어서 신이 된다는 명예 앞에서 전쟁에서 기꺼이 죽음을 선택하였다.

문학평론가인 저자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하여 치유와 단독자, 힐링의 문학이라 평하고 있다. 1960년대 후반 일본에서 진행되었던 진보 운동은 실패로 남았고, 그 실패로 생긴 결핍과 결여 속에서 발표된 노르웨이의 숲은 곧 치유와 힐링의 대상이 되었다. 하루키의 소설은 마취제, 콜라, 비타민이 된다. 특히 상처를 확인하고 넘어서는 과정은 독자의 마음을 울린다. 최근에 와서는 일본인이 제대로 조우하지 못하는 역사적인 죄의식과 아픔 앞에 서게 하고, 치유의 기회를 부여한다. 일본의 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가 자신이 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해 자실을 막기 위함이라고 한 것처럼, 하루키의 소설 역시 진실이 무엇인지 헷갈려 하는 그들을 치유하는 도구가 된다.

하루키의 문학에서 뚜렷하게 돋보이는 주제는 단독자(Singularity)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실패로 인하여 죽음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외롭고 고독하더라도 혼자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깊이 접근한다. 영리하고 빈틈없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잘 계산된 놀이공원을 연상시키지만, 죽음이 아닌 치유와 힐링으로 공감받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수치의 문화

부끄러움은 무사들을 용감하게 만들었고, 명예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게 만들었다

일본인은 스마마셍〔済みません〕이라는 말을 참 많이 쓴다. 이 말은 일본인의 부끄러움의 미학을 대변하는 일상적인 용어이다. 미안해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일본인들에게 보편화되어 아예 육체화되어 있다. 서구의 문화인류학자들은 이런 부끄러움의 미학을 일본인만의 특징으로 보곤 하지만, 사실 동양에 널리 퍼져 있는 일반적인 특성이자, 유교권의 국가에서는 하나의 덕목이기도 하다. 다만, 일본만의 특징은 부끄러움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는 극한의 정서에 있다.

일본인의 부끄러움을 만들어내는 핵심을 논할 때, 전통적인 일본 문화론에 따르면 일본인의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특성은 집단주의다. 가령, 서양의 죄의 문화에 대별되는 일본인의 부끄러움의 문화’, 계급적인 사회를 뜻하는 종적 사회’, 응석부림을 뜻하는 아마에〔甘え〕문화’, 철저한 동료의식이 형성되어야 함께 일하는 나카마〔中間〕의식’, ‘일본의 특수한 집단주의를 강조해서 말하는 집단아(集團我)’라는 개념 등이 사실은 모두 집단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이 집단주의를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무사도(武士道)’이다. 무사가 명예스럽게 사는 길은 수치를 당하지 않는 것이다. 명예란 곧 수치스럽지 않은 것이고, 불명예란 수치스러운 것이다.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면 차라리 스스로 배를 가르는 하라키리〔腹切り〕를 택했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무사들을 용감하게 만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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